
자동차가 해마다 더 길고, 넓고, 높아지고 있다. SUV와 크로스오버 인기가 이어지면서 지상고와 보닛 높이도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 같은 차량 대형화가 교통안전과 주차난, 에너지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차량 크기에 따라 세금이나 주차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까지 제안됐다.

유럽 교통환경단체 T&E(Transport & Environment)와 클린 시티즈(Clean Cities)는 최근 ‘카스프레딩(Carspreading)’이라는 개념을 다룬 보고서를 발표했다. 카스프레딩은 자동차가 점점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는 매년 평균 1.2cm씩 길어지고 있으며, 높이도 매년 평균 0.5cm씩 커지고 있다. 앞선 T&E 연구에서는 차량 폭과 보닛 높이 역시 매년 약 0.5cm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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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T&E |
흥미로운 점은 차량은 계속 커지고 있지만, 자동차를 구매하는 가구의 평균 규모는 오히려 줄고 있다는 점이다.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과 달리, 시장에서는 대형 SUV와 크로스오버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두 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비교했다. 하나는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져 대형차와 SUV 판매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정책을 통해 ‘적정 크기(Right-sizing)’를 유도해 평균 차량 크기를 2010~2015년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되돌리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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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T&E |
연구진은 차량 대형화가 계속될 경우 2040년까지 도심 노상 주차 공간이 8.5~14%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럴 경우 런던과 베를린에서는 각각 약 10만 개의 노상 주차 공간이 사라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우리나라도 대도시처럼 주차난이 이미 심각한 지역이라면, 차량 대형화는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도시 운영 비용과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교통안전도 핵심 쟁점이다. T&E는 보닛 높이가 높을수록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피해가 커진다는 기존 연구들을 인용했다. 보고서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40년까지 ‘적정 크기’ 시나리오보다 교통약자 사망자가 약 2,570명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어린이 보행자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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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T&E |
에너지 소비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차량이 커질수록 무게가 늘고, 이는 내연기관차뿐 아니라 전기차에도 영향을 준다. 전기차라고 해도 차체가 크고 무거우면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T&E는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40년 유럽 전기차가 연간 22.5TWh의 전력을 추가로 소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육상 풍력발전기 약 1,500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같은 기간 1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추가로 수입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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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T&E |
이에 보고서는 강력한 규제 방안도 제시했다. 보닛 높이를 최대 85cm로 제한하고, 차량 폭은 192cm 이하로 규제하는 방안이다. 또 차량 크기나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주차요금도 차량 크기에 비례해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장 4.2m 이하의 소형 전기차에만 일부 규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국내 시각에서도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SUV 선호가 뚜렷해졌고, 준중형 SUV조차 과거 중형차에 가까운 크기로 커지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과 도심 노상 주차 공간은 그대로인데 차량 크기만 커지면서 문콕, 주차선 침범, 회전 반경 문제 등이 일상적인 불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유럽에서 차량 면적 기준 세금이나 주차요금 차등제가 현실화된다면,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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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T&E |
다만 이런 제안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20년 동안 소비자들은 꾸준히 SUV와 크로스오버를 선택해 왔다. 자동차 제조사 역시 대형 승용차와 SUV, 픽업트럭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일부 안전·연비 규제에서도 대형차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형성된 점도 차량 대형화를 부추긴 요인으로 지적된다.
결국, 핵심은 소비자에게 무조건 작은 차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 공간, 보행자 안전, 에너지 소비를 고려해 자동차 제조사들이 다시 소형차와 적정 크기의 차량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차가 커질수록 편안함은 늘어날 수 있지만, 그 비용을 사회 전체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면 세금과 규제 논의는 앞으로 더 본격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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