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 출신 조각가 앤드루 글러비(Andrew Glubbey)에게 배는 오래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는 배의 둥글고 우스꽝스러운 형태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자신만의 이동 수단을 만들 때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져왔다.
글러비가 만든 것은 이른바 ‘배 자동차(pear-mobile)’다. 기반 차량은 제뉴인 훌리건(Genuine Hooligan) 170cc 스쿠터다. 그는 2x4 목재와 알루미늄 캔 등을 활용해 스쿠터를 감싸는 배 모양 구조물을 직접 제작했다. 하지만 조형물을 완성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진짜 목표는 이 배 모양 스쿠터를 타고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미국을 횡단하는 것이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배의 형태를 정말 좋아한다. 원래부터 배를 먹는 것도 좋아했다”면서 “사과에 작은 머리가 달린 것 같은 모습이다. 가장 우스꽝스럽게 생긴 과일 중 하나이고, 행복해 보이는 형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배를 주제로 한 조각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고, 조형물로 만들기에도 재미있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특히 스쿠터 위에 올리기에도 크기가 잘 맞았다. 배 모양 구조물 내부에 충분한 수납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글러비는 장거리 여행이 낯선 인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미니밴을 기반으로 만든 아트카를 타고 동료들과 함께 미국을 횡단했다. 하지만 2026년 들어 치솟은 유가는 그의 여행 계획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연료비를 아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에 버스가 한 대 있었고, 그 차를 타고 워싱턴주까지 여행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전쟁 여파로 휘발유 가격이 치솟으며 계산을 다시 했다.
글러비는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나는 조금 더러워지거나 비를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버스 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연료 효율이 훨씬 좋은 스쿠터를 선택했다.
플로리다를 출발한 글러비는 북쪽으로 향해 조지아주를 통과했다. 이후 가능한 많은 도시를 방문한 뒤,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 지역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스쿠터로 미국을 횡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글러비도 적응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배 모양 구조물과 헬멧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스쿠터는 최고속도 약 89km까지 낼 수 있어 총 4,989km에 이르는 여정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러비는 “이 배 모양 탈것이 두 바퀴 위에서도 이렇게 쉽게 달릴 줄은 몰랐다”면서 “다른 사람들도 오토바이를 이용해 비슷한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기에도 좋고, 중간중간 쉬어가기에도 알맞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쿠터 여행은 자동차 여행보다 체력 소모가 크다. 장시간 계속 달리기 어렵고, 날씨와 도로 상황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글러비는 “오토바이는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이 훨씬 힘들다.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조각 작업의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정말 좋아한다. 차량 자체를 거의 개조할 필요가 없고, 작업할 공간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오토바이는 차체를 기울여 코너를 돌아야 하는 만큼, 조형물 설계에는 신경 쓸 부분이 많다. 조형물이 노면에 닿지 않도록 바닥에서 충분한 높이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러비의 미국 횡단 여행은 단순히 독특한 풍경을 보기 위한 여정이 아니다. 조각은 그의 가장 큰 열정이고,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주로 자동차를 활용한 아트카 형태로 구현돼왔다. 전국을 여행하는 일은 그에게 새로운 관람객을 직접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과거 선박을 주제로 한 미니밴 기반 아트카를 제작한 바 있다. 해당 차량은 뒤쪽에 계단까지 갖춘 독특한 구조였고, 2025년 휴스턴 아트카 퍼레이드(Houston Art Car Parade)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수상이 아니다. 글러비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는 “이 차량에 대해서는 거의 좋은 반응만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여러 기상천외한 차량을 운전해 봤지만, 느리게 달릴 때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손가락 욕설을 받거나,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심한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배 모양 스쿠터는 달랐다. 사람들이 그를 추월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친근하게 경적을 울려준다. 글러비는 “지금까지 내가 만든 조형 차량 가운데 가장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차량”이라고 자랑했다.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시작한 아이디어는 어느새 미국을 가로지르는 흥미로운 예술 프로젝트가 됐다. 배 모양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글러비의 여정은 단순한 도로 여행을 넘어, 이동 수단이 얼마나 즐겁고 엉뚱한 방식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더드라이브 / 조윤주 기자 auto@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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