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슈퍼카를 만들었다고?” 90년대 숨겨진 SSC-1 이야기
조윤주 기자
auto@thedrive.co.kr | 2026-04-30 16:59:25
삼성이 미드십 스포츠카를 만들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시기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로터스는 전륜구동 엘란 개발을 마친 뒤 해당 프로젝트를 통째로 기아에 넘겼고, 기아는 일부 디자인을 수정해 1996년 양산에 들어갔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당시 자동차 산업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다.
같은 시기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은 전자 산업을 넘어 자동차 산업 진출을 추진했다. 기아 인수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삼성자동차와 삼성상용차를 새롭게 설립하며 독자적인 자동차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 1995년까지 관련 인프라는 상당 부분 마련된 상태였다.
그러나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설립 초기 단계였던 삼성자동차는 곧바로 매각 대상이 됐고, 대우자동차는 GM 인수 과정으로 인해 인수가 불가능했으며, 현대차는 대신 1997년 부도 상태였던 기아에 투자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산업은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이 이어지는 혼란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삼성은 1997년 서울모터쇼에서 SSC-1을 공개했다. ‘Samsung Sports Car-1’을 의미하는 이 콘셉트카는 스포츠카 개발 경험이 없던 기업이 선보였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현재는 업계에서조차 잊힌 모델로 남아 있다.
SSC-1은 미드십 구조의 2인승 스포츠카로, 섬유 강화 플라스틱 차체와 닛산에서 공급받은 2.5리터 V6 엔진(약 190마력)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이후 삼성자동차 SM5에도 사용된 바 있다. 5단 수동변속기와 전륜·후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브렘보 브레이크, 17인치 휠 등을 적용했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프랑스 스포츠카 벤추리 아틀란티크와의 유사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두 모델 모두 미드십 구조와 유사한 비율을 갖고 있으나, 실제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SSC-1 공개 1년 후 삼성자동차는 르노와 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지분 70%를 넘겼고, 이후 삼성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르노코리아를 통해 국내 생산이 이어지고 있다.
SSC-1의 제작 대수 역시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1대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01년 부산모터쇼에서 르노-삼성 로고를 적용한 은색 차량이 전시됐고, 2002년에는 노란색 차량이 삼성 교통박물관에서 포착된 기록이 있다. 두 차량은 휠 디자인과 일부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어 동일 차량의 재도색 여부를 두고 논란이 존재한다.
이 사례는 자동차 산업 진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삼성은 자본과 기술 협력, 의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외부 경제 혼란이라는 변수에 의해 사업이 중단됐다. 이는 최근 소니가 혼다와 함께 전기차 사업에 진출하려고 시도한 사례와도 비교된다.
SSC-1은 판매를 위한 모델이 아니라 삼성의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기 위한 상징적 프로젝트였다. 디자인과 기술 완성도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한 사업 확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전략 실패라기보다는 시기의 문제로 해석된다.
해당 차량은 이후 부산의 한 전시 공간에서 발견되기도 했으며, 일반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보존돼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이처럼 역사 속에 묻힌 프로젝트들이 존재하며, 이는 산업의 변화와 기업 전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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