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판결로 다시 본 우유와 식물성 음료…이름보다 중요한 영양 차이
조채완 기자
auto@thedrive.co.kr | 2026-10-22 15:18:35
식품의 포장 문구와 제품명은 소비자가 제품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재료가 서로 다른 식품에 유사한 명칭이나 표현을 쓸 경우, 소비자가 실제 특성을 혼동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은 식품 표시 규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최근 스위스 연방대법원이 식물성 음료 포장의 우유 연상 문구가 식품 표시 규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리고, 해당 기업이 제품명 변경에 나서면서 이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귀리 음료 포장 전면에 쓰인 ‘SHHH… THIS IS NOT M*LK(쉿… 이건 우유가 아니야)’라는 문구였다. 스위스 취리히주 식품관리 당국은 2022년 해당 표시 방식을 문제 삼아 제품 유통을 금지했고, 취리히주 행정법원도 2024년 제조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스위스 연방대법원 역시 2026년 3월 27일 4대 1로 브랜드 측 항소를 기각하며 하급심 판단을 확정했다.
법원의 논리는 분명했다. 우유는 동물의 젖에서 얻는 식품이며, 식물성 원료로 만든 음료에 우유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쓰면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문 형태의 문구나 변형된 철자를 사용했더라도, 포장 전면에서 우유라는 명칭을 강조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법원은 우유가 아니라는 설명을 포장에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표시 규정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결 이후 해당 브랜드는 스위스 판매 제품의 이름을 ‘SHHH… THIS IS TASTY(쉿… 이건 맛있어)’로 바꾸겠다고 2026년 9월 15일 발표했다. 우유와의 관계를 언급하는 대신 제품의 맛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으로, 법적 분쟁이 브랜드 전략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다.
비슷한 논쟁은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 중이다. 영국에서는 ‘POST MILK GENERATION’이라는 표현의 상표 등록을 둘러싼 분쟁에서 대법원이 등록을 허용하지 않는 판단을 내렸고, 호주에서도 비유제품에 유제품 명칭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낙농업계를 중심으로 표시 규제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사례는 상표권 분쟁이라는 점에서 스위스의 식품 표시 규정 위반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식품 명칭이 소비자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같다.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짚는 것은 식품의 명칭과 표현 방식이 소비자의 제품 이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제품명은 소비자가 식품의 성격을 가장 먼저 파악하는 수단인 만큼, 명칭이 주는 인상과 실제 원재료·특성 사이의 간극을 소비자가 정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유와 식물성 음료는 쓰임새가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원재료와 영양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 우유는 단백질, 칼슘, 비타민 B12, 리보플라빈, 인, 칼륨 등 다양한 영양소를 자연 상태로 함유하고 있다. 반면 귀리·아몬드·콩 등으로 만든 식물성 음료는 원료와 제조 방식에 따라 영양소 구성이 크게 달라지며, 일부 제품은 칼슘이나 비타민을 별도로 강화하기도 한다. 미국 FDA도 식물성 음료의 영양 성분이 원료와 가공 방식, 첨가 성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하고 있다. 모든 식물성 음료가 우유와 동일한 영양 구성을 갖는 것은 아닌 만큼, 제품을 선택할 때 성분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식품 표시 환경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물성 대체식품의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소비자와 실제로 만나는 다양한 판매 현장에서 이 기준이 충분히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카페나 디저트 전문점에서 '오트 밀크', '아몬드 우유' 등의 메뉴명을 사용하는 경우, 소비자가 우유를 사용한 메뉴와 식물성 음료를 사용한 메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지도 점검해볼 지점이다. 완제품 포장 표시뿐 아니라 외식 현장에서의 정보 제공 방식에 대해서도 관련 기준의 적용 범위를 폭넓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두 식품 중 어느 하나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을 소비자가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식생활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번 스위스 사례는 제품의 이름과 표현 하나가 법적 판단을 넘어 기업의 브랜드 전략 전반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식품의 명칭과 영양적 특성이 소비자에게 혼동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표시 기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우유의 영양학적 가치와 국산 우유의 특성을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소비자가 제품의 이름이나 이미지에만 기대지 않고 원재료와 영양 정보를 직접 확인해 판단할 수 있을 때, 우유가 일상 식생활에서 제공하는 고유한 영양적 가치 역시 더욱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다.
식물성 음료에 우유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쓰는 문제는 마케팅의 영역을 넘어 식품 정보의 정확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스위스의 판결과 제품명 변경 사례는 명칭 하나가 소비자 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국내 식품 표시 기준과 현장 적용에 대한 논의에도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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