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완의 세상만사] 달달이 한 잔의 의미

thedrive

thedrive@thedrive.co.kr | 2021-04-16 10:36:20

 


박물관에 나오자마자 믹스커피 한 잔을 한다.


달달한 이 맛.

느긋한 이 기분.

​

그러고 보니 정년퇴직 뒤 다니던 회사 생각이 난다.

무슨 일로 조기 퇴직한,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적었던 한 간부가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

퇴직하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믹스커피였어요.

회사 다닐 땐 하루 10 잔, 스무 잔 생각 없이 마셔댔는데

정작 집에서 마시려니 단 한 잔도 얼마나 부담이 되던지.....

​

그러면서 

봉급은 전 직장의 반의반도 안 되지만

마음대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생활이 행복하단다.

​

그 말을 듣고

이 자가 주머니가 빈궁하니 마음마저 빈한해졌구나 

속으로 불쌍하게 생각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일간 전문지에서

기자로선 최고의 직위까지 올랐던 사람이  

공짜 믹스커피에 이처럼 감읍하다니....

​

그런데 직장 생활을 완전히 접고 집안에 들어박히자


나에게도 믹스커피가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커피를 이리 많이 마셨던가?

아메리카노를 하루 한, 두 잔씩 하면서도

믹스커피를 따로 서, 너 잔을 마신다.

그러다 보니 한 박스 사다 놓아야 얼마 안 가 바닥이 난다.

커피값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급기야 믹스커피 중독(?)인 아내와

건강에 안 좋다는 핑계로 그만 마셔라, 마라 

티격태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

이제 비록 봉사직이지만 박물관에 다니면서

믹스 커피는 다시 아무 갈등 없이 마시게 됐다.

예전의 그 친구처럼 행복까지는 아니라도 

여간 흡족한 게 아니다.

​

커피라기보다는 설탕물에 가까운 믹스커피. 

대단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뇨 비만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데

이렇게 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

서민들에게 믹스커피는 

커피라기 보다 무료할 때 먹는 간식, 

당  떨어질 때 마시는 응급처방. 

지친 몸과 기분을 풀어주는 피로 회복제 아닐까?

 

<작성자 = 마음 가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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